real story [ 30. 길을 찾는 자를 만나다 ]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자주 사진 여행을 다녔다. 학교에서 우연히 만난 동아리 후배와 사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지나가던 또 다른 친구도 합세했다. 또 다른 사진 여행을 계획하게 됐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한적한 벤치를 찾아 이야기를 이어 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길을 물어 왔다.

 

세 번이나 사람들이 길을 물어 오는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람들이 잘 오지 않는 외진 곳이었고, 사람들도 굳이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와서 길을 묻는 것도 신기했다. 후배와 먼저 헤어지고, 함께 있던 다른 친구가,“야, 이상하지 않아? 뭐지? 왜 사람들이 자꾸 우리에게 길을 묻는 걸까? ”친구의 말이 마치 답으로 들렸다. 다음에 후배를 만나면 한번 인생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배를 우연히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후배는 올해 초부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유난히 생각이 깊어졌다고 했다. 최근에는 그 생각에 너무 깊이 고민 하다가 질식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인생을 더 제대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증거했고, 후배는 성경을 한번 배워 보고 싶다고 했다.

 

며칠 뒤 수요예배 설교 말씀 중에 ‘길’에 대한 말씀이 나왔다. 인생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말씀이었다. 후배 생각이 나서 이 말씀을 전해 주어야겠다는 강한 감동이 왔다. 하지만 감동받았던 것을 까맣게 잊고, 후배에게 어떤 강의를 하면 좋을까 하고 다시 고민했다. ‘주님, 제가 후배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면 좋을까요? 제발 가르쳐 주세요! 네?’라고 기도를 마치고 카페를 나가려는데 귀여운 꼬마가 웃으며 달려왔다. 순간 기도했던 것이 생각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의 티셔츠에 영어로 된 ‘Way’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 이 후배는 길 과 뭔가 사연이 있나 보다. 오늘 길에 대한 말씀을 해 주어야겠구나’ 하고 수요말씀을 잘 정리해서 전해 주었다.

 

우연히 만나서 사진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날, 길을 물으러 온 사람들이 많았던 게 왠지 감동이 되어서 ‘길’에 대한 말씀을 찾아 전해 주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후배가 오늘따라 자기에게 길을 물어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다. 외국인까지 자기에게 와서 길을 물어보기에 ‘왜 다들 나한테만 와서 길을 묻지? 내가 그렇게 쉬워 보이나?’ 하고 화까지 조금 났다고 한다. 꼬마의 티셔츠에 있었던 ‘Way’라는 글자가 눈에 확 뜨인 사연도 이야기해 주었더니 후배는 엄청난 반응을 보이면서,“우와~~ 저 소름이 돋아요! 제가 사실은 3년 동안 하나님께 기도했었거든요. 제발 길을 보여 달라고… 만일 길을 보여 주신 다면 그 길대로 살겠노라고. 그 길을 따라서 살면서 변하지 않겠 다고 기도했어요.”라고 하는데, 전율이 느껴졌다. 3년 동안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어서 하나님이 자신을 떠났다고 오해했다고 한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죄책감을 가진 채 살아가던 후배가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의 시간이었다.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그의 소원대로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것을 깨닫고, 열심히 성경공부를 했다. 하나님을 실!체! 로! 느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는 3년이나 간절히 찾아서 받은 인생길! 내가 지금 걷는 이 길이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고, 가치를 잊으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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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정명석 목사의 수요설교] – 실체가 귀하고 중하다. 속 이 겉보다 크다 / 고린도후서 4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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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가 귀하고 중하다. 속 이 겉보다 크다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고린도후서 4장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아무리 <대단한 그림 작품>, <잘 찍은 사진>,
<대단한 형상의 자연석>이라도
그것이 <실체>와 같이 ‘기능’은 하지 못합니다.
‘원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체>는 ‘원(原) 존재이기 때문’에
대화도 할 수 있고, 만질 수도 있으며
실제로 존재하기에 그리도 중하고 귀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이기에
그리도 중하고 귀합니다. 믿습니까?

<천지 만물과 모든 인간의 원 존재자>는
‘하나님, 성령님, 성자’이십니다.
고로 <천지 만물>과 <모든 인간>은
‘삼위일체의 상징물’이며 ‘상징체’입니다.

<원 존재>이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얼마나 중하고 귀한지 깨닫기 바랍니다.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기를 만들
‘원 존재를 닮은 최고 아름다운 상징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JMS 정명석 목사의 2016년 6월 8일 수요말씀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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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정명석 목사의 설교] – 실체 역사다. 실감 있게 해라. / 이사야 11장 9절 , 이사야 30장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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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MS / 정명석 목사의 설교 ]

실체 역사다. 실감 있게 해라.


이사야 11장 9절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30장 26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람은 직접 보고, 직접 듣고, 직접 만져 봐야

<실체>를 실감 나게 느낍니다.
그러나 <상징과 비유>는
‘실체의 증거물’, ‘실체의 그림자’에 불과하여
느낌도 만족도도 100%가 안 되고,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실체>가 없으니,
각종으로 <비유>를 들면서 <실체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듣는 자들은 느낌과 실감과 감동을 약하게 받았고,
이에 증거자들은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고로 <성령>께서 ‘증거자들이 증거 하는 터전 위’에
더욱 증거하고 감동시켜 깨닫게 하셨습니다.

 

실물보다 수백 배 작은 <사진>을 보는 것과

<실물>을 보는 것은 정말 다릅니다.

<사진>은 만져 봐도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사진>은 다만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지,

<실체>와는 달리 ‘현실감’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사진>으로 보다가
사진보다 수백 배 큰 <실체>를 보면 ‘거인’을 본 것 같습니다.
고로 ‘생각’도 달라지고 ‘느낌’도 달라집니다.

 

<말씀>도 그러합니다.
<말씀>도 ‘실체 주, 실체 성삼위,

실체 역사’를 증거 하는 ‘증거물’입니다.

<말씀>을 듣고 생각만 하면 실체적인 감이 없으니

<말씀>이 실감 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실제로 행하여

<실체>로 만들어야 수백 배 실감 나게 ‘큰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도 <실체>로 살아 있으니 얼마나 귀하고 좋습니까?
그러나 <실체>가 살아 있어도 행하지 않으면

<실체>가 없는 것과 같아서 느낌도 감동도 실감도 약합니다.
이제, 자신이 <실체>로 살아 있음을 절실히 깨닫고

<실체>를 가지고 어서 주와 함께 행하기를 축복합니다!

 

[ JMS 정명석 목사의 2016년4월 24일 주일말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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